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오 나치 (문단 편집) ==== 우크라이나 ==== [[우크라이나]]는 [[유로마이단]] 사태를 전후로 해서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러감정이 커지면서 히틀러의 정신을 받들어 러시아를 박살내자는 네오나치 계열의 극우민족주의자들이 잠시 세력을 늘린 적이 있었다. 이전에도 한국인 유학생이 4명의 스킨헤드에 의해 머리가 부서지고 사망하여 가해자들에게 13년형이 선고된 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제2차세계대전때 독일이 학살도 가했지만 우크라이나 독립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을 도와주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서 독립된 제국의 동맹국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을 받았던 나라인 만큼 나치 독일에 대한 적개심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자유당(우크라이나)|자유당]] 등 극우 정당부터 '우파진영', '프라비 섹토르' 등의 우크라이나 국수주의-네오나치 조직들이 활동한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사태 당시 친러정권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대의 일원으로 무장투쟁을 주도하며 정치적으로 운신의 폭을 잠깐이나마 넓힌 적이 있었다. [[파일:external/marumaru.in/397952d0cfa7d18d637eb1eef2e0a116120350.jpg|width=420]] [[파일:프라비 섹토르 당기.svg|width=420]] [[프라비 섹토르]] 이전에는 그저 깡패들의 단체였던 네오 나치 민병대인 [[아조우 연대|아조우 대대]]가 활발한 모병활동과 사설 훈련소까지 소유한 상태로 우크라이나 정부 지원 장비와 노획장비까지 합하여 최소 2대 이상의 2세대형 전차와 수대의 장갑차와 수십문에 달하는 중화기를 보유하여 외신들에게 논란이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외신에 노출되는 순간에도 공공연하게 [[하켄크로이츠]]를 위시한 나치의 상징을 보여주고 구호를 낭독하는 등 광신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독일 언론에서는 전쟁이 종결된 직후 이들을 빠르게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 우크라이나 정부 최대의 과제가 될것이라고 예측했으며 전장과 전쟁기술을 배운 이들이 이후 단순한 깡패집단이 아닌 테러집단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측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무슨 네오 나치에게 점령된 것 마냥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러시아 국영 통신과 TV뉴스는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사태를 [[https://bluemovie.tistory.com/559|시종일관 파시스트, 네오 나치 폭도들에 의한 쿠데타로 보도]]하여 러시아인들의 우크라이나 혐오 감정을 이끌어냈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네오나치 세력으로 프레이밍하려 안간힘을 썼고, 여기에 [[기갑 갤러리]]를 비롯한 다수의 커뮤니티가 혹한 흑역사가 있다. 그러나 2014년과 2019년에 치뤄진 총선을 보면 [[프라비 섹토르]]를 위시한 극우 진영은 하나같이 한자릿수 득표율을 올리며 무참히 '''떡발렸고'''[* 2014년 총선 결과: 자유당 득표율 4.71%, [[프라비 섹토르]] 득표율 1.80%. 2019년 총선 결과: 자유당 득표율 2.15%. 프라비 섹토르: 참여하지 않음.],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친서방 중도우파 세력에게 표를 던졌다.[* 하다못해 이런 극우 진영보다 친러 진영의 득표율이 더 높았다. 친러 정당인 삶을 위한 야권연단(Опозиційна платформа — За життя)은 2019년 총선에서 득표율 13.05%를 기록, 정당 중 2번째로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프라비 섹토르'의 지도자인 올렉산드르 무지치코는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폭동 및 검찰 공격혐의로 수배했고 끝내 사살되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최소한 러시아와는 달리 네오 나치와 극우 세력을 정부가 강력하게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서부 우크라이나에 네오 나치가 집권해서 동부 우크라이나가 두려움에 떨었다는 것도 러시아의 거짓 선동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래 우크라이나는 극심한 경제파탄을 겪었고, 동서 우크라이나가 지리한 정쟁을 치루어 내부 갈등[* 우크라이나군도 친러 반군에 투항하는 병사들도 상당수 있다. 소집만 하고 제대로 처우도 못하는 우크라이나군에 불만을 품고 예비군들이 폭력사태도 일으켰을 정도다.]으로 엉망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우크라이나군]]도 파탄 지경에 이르러서, [[크림 반도]]가 어이없게 넘어가고 [[돈바스]]에서 "반군"이 일어났을 때, 우크라이나 육군 병력 41,000명 중 실전 투입 가능 병력이 6,000명에 국한될 정도였다. 그래서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급히 민병대를 모았는데, 이 민병대에 네오 나치 세력이 적잖이 가담하여 국내외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돈바스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측 군대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우크라이나 정규군이었다.] 그러므로 동부에서 반발이 극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가 침공을 벌여 동부, 특히 친러 세력의 정치적, 경제적 기반이었던 [[돈바스]]가 작살이 나버리고 주민들이 빠져나가자, 우크라이나에 남은 동부도 완전히 반러로 돌아섰다. 왜냐하면 이 곳이야말로 러시아의 침공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네오 나치라고 난리가 났던 [[아조우 연대]]도 [[http://america.aljazeera.com/articles/2014/7/24/ukraine-azov-battalion.html|인원의 과반이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 러시아어 사용자들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선동과는 별개로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치즘이 다시 부활할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정세가 혼란할수록 힘이 커지는 [[정치극단주의]]의 특성상 세계적인 양극화로 인해 극우 세력들이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해 버렸고,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방역을 위한 통제로 인해 권위주의 역시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에 민병대에 가담한 네오 나치들이 러시아에 맞서 싸운 애국자로 포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향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강경한 반러 성향자가 되며, 이것이 인터넷으로 온 세상에 퍼질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